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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극장 아이공_프로그램

2017 아이공 신진작가지원전: 황윤정 《멸망한 나라의 글자들》

  • 유형 2017 아이공 신진작가지원전
  • 기간 2017-12-09~2017-12-29
  • 장소 미디어극장 아이공
  • 작가 황윤정 Hwang Yunjeong
  • 매칭 2017.12.15.금 6PM / 뮌(미디어 아티스트) X 황윤정
  • 관람 화-금 11AM – 6PM/토-일 12PM - 6PM (월요일 휴관)
  • 주최/후원 주최 (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주관 미디어극장 아이공/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관람료 무료

내용

기획의도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문화를 ‘의미들의 망’이라고 규정했다. 언어, 몸짓, 사물 등이 내포하는 의미들로 얼기설기 엮인 망.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므로, 그 망의 생김새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멸망한 나라’의 망은 어떤 모습일까.

미디어극장 아이공의 2017년 마지막 전시, 황윤정 작가의 《멸망한 나라의 글자들》을 진행한다. 아이공의 올해 마지막 신진작가지원전이기도 한 본 전시에서 작가는 예측과 통제를 비껴가는 언어와 사고를 다룬 네 편의 영상을 선보인다. 작품들은 변형하고 콜라주한 오래된 홈 비디오와 영화, 직접 촬영한 영상 등에 기반한다. 아날로그적인 정취가 짙고, 화려한 입체감을 자랑하는 3D, VR 영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관람자에게 ‘시청’보다는 ‘체험’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들이랄 만하다. 비균질적인 문장, 종잡을 수 없는 소리, 비정형적인 서사,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 이 모든 게 조화와 부조화를 이루기를 반복하며 고유한 ‘의미들의 망’을 직조해내고 관람자가 은연중에 갖고 있던 내밀한 기억과 상상을 건져 올리기 때문이다.

황윤정 작가의 작품들은 ‘비디오 콜라주’, ‘오디오비주얼 에세이’, 또는 ‘퍼포먼스 영상’과 같은 특정 장르로 간편하게 수렴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상과 문학이 중첩된 복합장르적인 작품들을 통해 흡사 멸망한 나라에서 빌려온 듯한, 파편화된 말과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나아가 관람자로 하여금 언어와 표상이 내재하는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작품 <준>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은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일 터.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아주 많았거나 하나도 없었다.’

 

전시연계행사 : 매칭토크&리셉션

뮌(미디어 아티스트) X 황윤정

2017.12.15.금 오후 6시

*아이공의 매칭토크 프로그램은 토크와 원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칭원고 전문은 전시기간 동안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노트

“상해를 겪은 뒤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나의 삶이 의존하는 사람들, 내가 알지 못하고 또 결코 알 수도 없을 사람들이 저기 밖에 있다는 점이다.”¹

그것은 절대적인 공포일 수밖에 없다. 내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말이나 생각, 혹은 살갗과 손톱, 액체와 고체 그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돌연 나의 어떤 부분을 돌이킬 수 없이 파고들거나 바꿔버릴 수 있다는 사실. 저 밖에 그것들, 그 말들, 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훼손당할 삶을 살고 있다. 버틀러의 말처럼 그것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훼손은 서로가 서로의 발치 아래에 적어 내려가는 글자가 서로에게 읽히거나 읽히지 않을 두 경우 모두에 해당되어 일어난다.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된 글자들의 나라에서 말과 이미지들은 빌려온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거나, 일시적인 정지 상태에 놓이기도 한다. 어느 곳에도 들어가거나 환대받을 수 없는 복도의 유령 상태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두 가지 상태는 사뭇 다른 것처럼 보이기는 해도 사실은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 

말의 유실, 삶의 고착을 포착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잃어버린 것이나 일시적으로 머물렀거나 머무르고 있는 곳은 쉽게 잊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는 이렇게 사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끊임없이 훼손당하고 침입당하고 상해를 입으면서 좁다란 통로를 통과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대부분의 경우 조금씩 깎여나가면서, 가끔은 스스로 어떤 부분을 잘라내기도 하면서 결국 우리는 만나야만 한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가까스로 열고, 굳어버린 다리를 움직여 고되게 이 긴 밤을 지나가야만 한다.

¹주디스 버틀러, <불확실한 삶>, 12p

 

작가 약력

황윤정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 후 크고 작은 일들에 참여하며 언저리를 떠돌고 있는 중이다. 2012년 12월, 아트티 갤러리에서 <풋풋>이라는 이름의 그룹전을 가졌으며 2013년 12월, 동일하게 아트티 갤러리에서 <프롤로그>라는 그룹전에 참가하였다. 2014년 6월 갤러리 토픽에서 그룹전 <문득>에 참여한 이후 2015년 일단멈춤에서 2인전 <망망>을 기획해 작은 드로잉 전을 가졌으며 2015년 8월 제15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대안장르 부문에서 <최후변론>을, 2016년 제16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의 글로컬구애전 부문에서 <Post Babel>을 상영했다. 

 

대안영상 작품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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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 Babel

    이것은 종말을 가정한 여행기이다. 두 번째 바벨탑이다. 화자는 누군가의 말을 듣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지도 못한 채로, 어떤 벽에 가로막힌 채로 대상들을 간접적으로 관람할 뿐 그 안에 섞여들거나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못한다. 화자는 떠나가고, 떠나가고, 또다시 떠나간다. 관람하던 화자는 종내에는 결국 떠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이제 차단을 견디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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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tel Exhibition

    화자는 어디서부터인가 떠나와서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그가 듣고 보는 모든 것은 마치 물에 잠겨있는 것만 같이 혼탁하고 간접적이다. 본래 있던 곳으로부터 납치당한 문맥과 이미지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정사각형으로 재단된 창문 바깥으로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가고 흘러갈 뿐이다. 화자는 이곳에서 모든 것을 관람하는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차단을 견디고자 하지만 화자가 머무는 공간은 그 어떤 상태도 그리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곳이고 결국 화자는 재회를 예언, 혹은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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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더 이상 발음하기 어려운 외국어로, 혹은 남의 목소리를 빌려서 가까스로, 없는 글자들을 창조해 말할 필요가 없다. 준. 그렇게 부르는 것만으로도 발신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소탈한 어조로 편지가 쓰여지고 규율 없는 고해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들의 눈앞으로 많은 것들이 지나간다. 우리가 한때 사랑할 수도 있었던 많은 것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증오해왔던 많은 것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서리를 돌고 나서 모든 것들은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멀리 떠나와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을 만큼 달라진 다음에서야 사랑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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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긴, 긴 밤을 지나

    무채색의 천을 뒤집어쓴 그들은 끊임없이 걷는다. 이따금 멈추어선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휴지이지 지속적인 정지가 아니다. 더이상 지어지지 않을 건물에, 영원한 사이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기다란 복도와 아무것도 없는 공동을 지나 문지방과 열쇠 구멍 사이에서 떠돌아다닌다. 지나가는 일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영원히 지나가야만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지나감’이 아니다. 떠돎이 곧 머묾이 되는 임시의 영원화 과정. 이 긴, 긴 밤을 지나면 무엇이 있을까.